히틀러의 오른팔이었던 남자가 돌연 망명한 이유

오늘은 나치 독일의 부총통이자 아돌프 히틀러의 부관인 '루돌프 헤스'를 둘러싼 많은 이야기들을 풀어보고자 합니다. 한때 히틀러의 오른팔이었던 그의 영국 망명은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로 남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 상당히 다양한 해석들이 존재하는데요. 어떠한 해석들이 있는지 자세히 알아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루돌프 헤스의 죽음을 둘러싸고도 다양한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46년의 복역 끝에 93세의 나이로 '의문의 자살'을 선택했다는 그의 죽음에 대해서도 한 번 알아볼까요?


루돌프 헤스는 히틀러의 오랜 전우이자 개인 비서였으며 아우슈비츠 집단 강제수용소의 소장으로 150만 명을 독살시킨 장본인이었습니다. 그가 히틀러를 처음 만난 것은 뮌헨 폭동에 참가했다가 함께 체포, 구금되었을 때입니다. 히틀러와 함께 란츠베르크 육군형무소에 수감된 그는 옥중에서 히틀러가 구술하는 “나의 투쟁” 필기하면서 히틀러의 최측근으로 성장하여 본격적으로 정계에 입문하게 됩니다.


1925년 나치스 재건 후 히틀러의 비서가 되었으며 총통대리, 국무장관, 총통 후계자 임명까지 히틀러의 최측근으로서 고속 승진을 한 루돌프 헤스입니다. 그런 그가 갑자기, 영국으로 망명하면서 독일을 비롯한 전 세계에 큰 혼란을 안겨줬습니다. 아직까지도 히틀러의 최측근이었던 그의 영국행은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로 남아있습니다.


(괴벨스 - 괴링 - 헤스)


때문에 이에 대해 많은 해석이 존재합니다. 첫 번째는 보르만의 진출로 인하여 헤스의 존재가 점차 희미해지자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그가 영국 밀항을 통해 평화교섭 밀사를 자처했다는 해석입니다. 그의 독자적인 판단 하에 타협적 교섭을 시도하였으나 이것이 제대로 성사되지 못한 것이죠.


두 번째 해석은 영국 첩보원 17F의 시나리오에 의해 루돌프 헤스가 영국으로의 망명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17F는 루돌프가 정기적으로 점쟁이를 찾아갈 정도로 미신에 광적으로 집착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점쟁이를 매수해 조작한 점괘로 헤스의 영국행을 이끌었다고 합니다.


(전범 재판소에서 미군 헌벙대 병사들의 감시하에 배식 중인 루돌프 헤스)


헤스의 교섭 시도가 히틀러의 지령이었는지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헤스의 망명 이후, 히틀러는 그와 절교를 선언하고 헤스를 정신병자라고 비난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루돌프 헤스가 기대했던 청사진과는 달리 그는 영국에 포로로 잡혀 감금되었죠.


종전 후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며 베를린의 슈판다우 연합군교도소에서 복역하다 1987년 8월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지막 21년간, 수감자는 루돌프 헤스 1명뿐이었다고 하니 정말 쓸쓸한 생의 마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버스비에서 추락한 루돌프 헤스의 비행기)


루돌프 헤스의 죽음을 둘러싸고도 다양한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유족들은 그의 유서필적이 다른 점, 가족을 끔찍이 아낀 헤스가 유언장에 가족들에 대한 말이 한 구절도 없는 점, 전깃줄이 부자연스럽게 얽혀있던 점을 근거로 들어 자살이 아닌 타살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실제 헤스는 영국으로 가던 중, 폭격으로 이미 사망했고 감옥에 갇힌 헤스는 그의 대리라는 음모론도 제기된 적 있습니다.

댓글(0)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