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지만 꼭 해야 하는 일

경력 19년차 장기이식 코디네이터

장기기증과 이식 전과정 도맡아

“고귀한 뜻 이어받아 나눔 전하겠다”

전 프로레슬러 이왕표씨가 암으로 9월 4일 세상을 떠났다. 그는 5년전,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력을 잃은 배우 이동우씨에게 각막을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이동우씨는 각막을 기증받아도 시력을 되찾을 수 없어 이왕표씨의 뜻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처럼 장기기증과 이식은 선의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또한 생명에 관한 일이므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신촌) 장기이식센터 전경옥(54)팀장이 바로 이 분야 전문가다. 수술실 간호사였고 1999년 우리나라에 장기등 이식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을 때부터 장기이식 코디네이터로 일했다. 외국과 달리 국내에선 장기이식 코디네이터란 명칭만 사용할 뿐 공식 자격증은 따로 없다. 단, 소속 병원과 질병관리본부 산하 한국장기이식관리센터(KONOS·코노스)에서 관련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세브란스 병원 장기이식센터 전경옥 팀장

출처jobsN

“장기기증부터 이식까지 전 과정에 관여합니다. 생체장기이식의 경우 기증자, 수혜자와 그의 가족들을 모두 만나 이식 과정을 설명하고 이식 수술 후 입원까지 책임지고 진행합니다. 뇌사 장기기증의 경우 기증자가 세상을 떠나신 후 장례 준비에 필요한 행정절차까지도요. 뇌사 장기기증이 가능한 분의 가족분들로부터 동의를 구하고, 고귀한 뜻을 이어받아 이식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뇌사 시 장기기증을 원하면 병원 장기이식센터나 코노스에서 ‘장기기증 희망 서약서’를 받아 동의하고 제출해야 한다. 운전면허증에도 장기기증 희망 서약 스티커를 붙일 수 있다. 하지만 이 희망 서약은 법적 효력이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선 장기기증에 반드시 법적 보호자 동의가 있어야 한다.

“노숙자 쉼터 등 시설에 거주하다 뇌사로 사망한 분이 있었는데 보호자가 없어 기증 절차를 진행하지 못했어요. 그만큼 보호자 동의가 중요합니다. 만약 본인이 뇌사 시 장기기증을 희망한다면 미리 주변에 널리 알려야 합니다. 그래야 예기치 못하게 세상을 떠나는 일이 생기더라도 신중히 결정한 그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세상을 떠난 아들의 심장을 이식받은 남성의 가슴에 청진기를 대고 심장소리를 들은 엄마는 결국 오열했다.

출처BBC 제공

우리나라 장기이식 대기자는 3만명이 넘는다. 이에 비해 기증자는 턱없이 부족하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2017년 기준 국내 누적 장기이식 대기자가 3만4187명이지만 장기기증자는 2897명에 불과하다고 9월 5일 발표했다.

신장, 간 등 살아있을때 장기를 기증하는 기증자가 2338명이고, 뇌사후 기증자는 515명, 사후 각막기증자는 44명이다. 인구 100만명당 뇌사 장기기증자는 스페인이 46.9명, 미국은 31.96명, 이탈리아가 28.2명, 영국이 23.5명인데 우리나라는 9.95명꼴이다.

“우리나라는 유교적 인식이 여전해 장기기증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합니다. 20~30대 사망자가 생전에 뇌사 시 장기기증을 원했더라도 사후에 가족들 중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반대하는 경우를 흔히 봅니다.

이런 인식부터 조금씩 바꿔야 합니다. 그래서 전 장기기증자 추모식도 꼭 엄격한 분위기로 진행하지 말자고 해요. 뜻깊은 일을 하고 떠나신 분인데, 그 분을 추억하면서 감사함을 느끼는 의식이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가볍게 흘러가선 안되겠죠.”

장기이식 코디네이터는 가족들의 모든 감정을 이해하고 받아줄 때가 많다.

출처JTBC ‘라이프’ 캡처

전 팀장은 장기이식센터에서 일하면서 생명의 소중함을 매 순간 느낀다. ‘생명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뇌사 장기기증을 진행할 땐 냉철함과 침착함을 유지하려 한다.

기증자, 수혜자 양측 가족을 번갈아 만나며 감정이입으로 힘들 때도 있다. 한 쪽엔 어렵고 힘든 이야기를 해야 하고, 또다른 한 쪽엔 어쩌면 그들이 가장 기뻐할 소식을 전한다. 하지만 전 팀장은 그럴수록 이성을 유지하려 애쓴다. 생명을 다루는 일이기에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뇌사자 가족에게 먼저 환자 상태를 정확히 설명합니다. 그리고 조심스레 장기기증 의사를 여쭙고 상황을 설명드립니다. 가족을 잃은 슬픔도 가누기 힘든데 갑자기 장기기증까지 결정해야 하니까요. 그분들의 마음을 진심으로 공감하고 행여나 상처가 될 말을 하지 않도록 조심합니다. 당연한 일이예요. 그런 자세로 장기기증이 얼마나 뜻깊은 일인지 말씀드립니다.

기증이 결정되면 수혜자에게 전화를 걸어요. ‘그동안 오래 기다리셨습니다’라고 말하면, 갑작스런 소식에 당황하기도 하지만 기쁨의 눈물을 터트리시는 분도 있습니다. 수혜자와 가족들에게 강조하는 점이 있어요. 기증자 가족들이 얼마나 힘들게 이같은 결정을 했는지 전하고, 그 뜻을 이어가려면 앞으로 건강관리를 잘하셔야 한다고 말씀드립니다.”

전 팀장은 가족의 마음을 배려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출처JTBC ‘라이프’ 캡처

전 팀장은 그야말로 기가 막힌 사연을 수없이 맞닥뜨렸다고 한다. 안타까운 죽음들, 하늘이 무너진듯 슬퍼하는 가족들을 많이 봤다. 그중에서도 최근 있었던 일은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30대 가장이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택시 운전을 하던, 생후 2개월 갓난아기의 아빠였습니다. 그런데 세상을 떠나기 불과 2주전 우연히 장기기증 관련 드라마를 보며 아내에게 ‘만약 내가 갑자기 죽으면 장기기증을 하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대요. 아내분이 기억을 떠올리셨고, 저희와 상담을 거쳐 기증을 결정하셨어요. 남편의 그 마음을 지켜주고 싶다면서요.

자식을 떠나보낸 부모님들의 마음도 이와 같아요. ‘우리 아이로 인해 누군가 건강을 되찾는다면, 세상을 떠난 아이가 계속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질 것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전 팀장을 비롯한 6명의 장기이식센터 직원들은 24시간 대기상태다. 언제, 어디서 장기기증이 가능한 뇌사자가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퇴근후 잠을 자다가 또는 휴가중에 다시 병원으로 달려가는 건 기본이다. 기증동의를 받고 이식수술할 장기를 수송해오기 위해 헬기나 앰뷸런스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닌다. 하루안에 제주도나 목포를 왕복한 적도 있다.

故최요삼 선수는 가족 동의하에 장기를 기증해 6명에게 새 삶을 선물했다.

출처’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일과 휴식의 구분이 없어 힘들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장기기증 제도의 허점이다. 손꼽아 이식을 기다리는 대기자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급한데 법적인 장치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현행법상 ‘뇌사’는 장기기증 시에만 사망으로 인정합니다. 만약 뇌사자가 사건사고와 관련있으면 사망 인정 절차는 더 복잡해집니다. 뇌사에 대한 법적 규정과 대중들의 인식이 바뀌면 뇌사 장기기증이 증가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새 삶을 얻을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또 뇌사추정자 신고율이 낮다는 점도 큰 문제입니다. 현행 장기기증 관련법상 뇌사자가 발생하면 병원에서 바로 장기이식관리센터나 한국장기기증원에 신고해야 하는데 이를 위반해도 처벌이 약하기 때문에 잘 지켜지지 않아요. 관련자들 모두 장기기증과 이식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갖고 협조해야 합니다.”

운전면허증을 신규 및 갱신 발급할 때 미리 이야기하면 운전면허증에 장기기증 의사를 표시할 수 있다.

출처조선 DB

‘극한직업’이라고 불러도 손색 없을 만큼 체력적,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지만 전 팀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다른 과로 보내달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장기이식센터를 지키는 이유가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이 일은 중독성이 있어요. 아파서 희망조차 버렸던 환자가 이식수술을 받고 건강해져 환하게 웃으며 다시 병원에 찾아오는 모습을 보면 그동안 쌓인 피로가 한순간에 녹아버립니다. 그래서 이곳을 떠날 수 없어요.

간호사로서 전문성도 발휘할 수 있고, 다른 어떤 부서보다 타인을 위한 일이라 보람이 큽니다. 이 일을 하면서 감사함을 배웠어요. 앞으로도 떠난 사람의 고귀한 뜻을 지키고, 또다른 누군가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습니다.”

글 jobsN 김민정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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